옛부터 운동경기(특히 각종구기종목)의 관람할 때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입을 하기가 쉽질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질 경우를 대비해 미리 열을 내기가 싫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단체경기는 되도록 피하고 단식위주, 남들이 신경 안쓰는 경기(취향도 마어니했다..)
만 찾아다녔다. 올림픽때도 2002년 월드컵때에도 일부러 중계를 피한 적도 있었다.
그런 마이너 관람객인 나에게도 가장 인상깊게 본 tv경기를 뽑자면
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단신 결승이었는데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실지 모르겠지만 04년 탁구 결승에선 당시 관중에 있던
한 외국인 어린이가 유승민선수의 승리가 확정되자 역동적으로 환호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가수 ㅇ씨가 몇년동안 진행했던 심야의 가요프로에서도 화자 된 적이 있다.
(지금은 k방송국에서 퇴출당한 ㄱ씨가 당시 그 소년의 얘기를
우스개로 삼아서 전해준 선명히 기억이 난다.)
그 다음이 작년 일본에서 가슴졸이며 봤던 베이징 올림픽 야구결승이 아니었나 싶다.
포수가 퇴장당했을 때에는 끝난 줄 알고 tv를 잠시 껐다가 켰었다.
반면에, 그만큼 다른 경기는 보는 일이 드물었고 실제로 보러가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
아니 손에 꼽아서 2,3번 되려나?
어렸을 적엔 한번 친구와 학교근처 운동경기장(당시로서는 시내에서 유일하게 공식 축구경기를 할 수 있지만
시설이 낡아 지금은 완전 방치된)에 지역팀의 축구경기를 본적이 있으나,
별 감흥이 없었고(소속감이 적은 사람은 이렇다),
후의 그 경기장은 고교시절 전국체전의 마스게임연습장으로 사용되어
하루 2시간의 연습이 계속되던 시절엔 당시 같은 학원에 다니던 여학생에게
"너희학교 마스게임은 왜 이렇게 웃기냐? ㅍㅎㅎ"란 식의 개그소재로 활용되어서
웬만해선 다시 찾아가고 싶지 않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당시 전국체전의 개최는 마스게임의 연습경기장이 아닌
시외곽의 개발구역에 새로 생긴 경기장에서 이뤄졌는데,
개막일 당시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참석하셨다. 우리는 실루엣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런 기억밖에 없었지만은 96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길에 청소반으로 남아 교실청소를 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학교에 찾아오셨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청소를 빨리 끝낸 뒤 졸래졸래 따라가 차에 탔더니,
나만이 아니라 다른 어른들과 한 어른의 자녀 1명이 함께 있었고 우리는 동승자가 되었다.
차는 학교를 뒤로하고 고속도로 통행소를 지나 서울로 향하더니 도착한 곳은 잠실야구장이었다.
96 한국시리즈의 마지막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떠올려도 당시의 나는 야구에 그다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야구를 해 본 경험도 전무한 소년이어서
억지로 끌려나온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기분 맞추겠답시고 했는지 잠자코 있었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암표를 요구하던 소년에게 대신 바톤을 넘겨주고 싶은 입장이었다.
아무튼 경기는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규칙도 잘 모르는 소년과,
야구에 대해 뼈가 굵은 어른들 사이에 이런저런 말이 오고가던 중에
몇회가 지났는지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홈런이 터져나왔고,
어른들은 환호했으며 박수갈채를 보내기 바빴다. 경기종료후
사회자가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선언하는 장내연설을 마치자
주변에 있던 모두가 기뻐했다.
경기 전에 뭘 먹었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한편으론 모두와 같이 즐거운 경기를 보았다. 라는 기억은 또렷히 남아있어서
몇년 전까지 당시의 관람표를 보관해둔 기억이 있다.
2장이었고, 뒤에는 90년대풍의 한 캐릭터였나 여성의 데이콤001의 광고가 있다.
새로 이사를 하면서 처분했는지 확인하기는 어려워졌지만 말이다.
어제 인터넷으로 타전된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이 당시의 기억을 오랜만에 되살려주었다.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시즌의 맥락을 알고 중계를 지켜보는 경기는 야구뿐인데
그 이후였을까...끝내 본격적인 야구는 하지 못했지만
간간히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는 수준의 놀이가 생겨났다.
그러고 보면 우연한 계기가 취미생활을 만드는데 한 몫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2009/10/25 15:06
- miraepa.egloos.com/2457395
- 덧글수 : 0



덧글